<p class="ql-block">창밖의 별,내 방의 빛 / 유미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눈 깜짝일 사이라는 말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쓰이게 된 연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청도를 떠나 한국에 와서 정착한 지 벌써 석 달이 흘렀다. 새로운 곳 새로운 생활이 조금씩 정리 정돈되니 이제는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고 그 속에서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청도에 있을 때 우리 집은 가로등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깊은 밤이 되면 창밖은 완전한 암흑에 휩싸였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발을 조심히 내디디며 손을 더듬더듬 벽을 짚어야 했고 창밖을 바라보아도 안개 낀 달빛조차 희미할 뿐이었다. 가로등의 혜택이란 그저 먼 길을 걸어갈 때나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한국에 와서 산 곳은 길옆집이었다. 첫날 밤, 불을 모두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천정과 벽에 은은한 빛이 흩어져 있었다. 깜짝 놀라 창가로 가보니 바로 길 건너편에 우뚝 선 가로등이 따뜻한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이 창문을 틈새로 스며들어 방바닥에 늘어놓은 슬리퍼를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순간, 마치 암흑의 나라에서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로년에 접어들어 밤중에 자주 드나드는 화장실 길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둠을 헤치며 걷지 않아도 되고 발걸음이 자신 있게 된다. 가로등 빛이 비치는 복도는 마치 안내하는 친구처럼 다정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럽게 가로등이 고장났다. 평소와 같이 밤에 화장실에 갔는데 평소 은은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지고 복도는 완전한 어둠에 휩싸였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벽을 손으로 더듬어야 했고 발을 잘못 디뎌 물건에 부딪히기도 했다. 평소에는 눈치도 못 챘던 불편함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수리를 요청했고 그날 밤에는 다시 가로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가로등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지금껏 가로등을 그저 길을 밝히는 공공시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근래에 다시 바라보니 그것은 해가 지면 누구보다 먼저 깨어나 아침 해 뜨기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키는 존재였다. 비가 올 때도 눈보라가 칠 때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다. 누구의 칭찬도 바라지 않으며 그저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가로등의 빛은 땅에 떨어진 별빛 같다. 높은 하늘에 빛나지 않아도 사람들의 발밑을 환하게 해주는 빛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이 빛은 깨어 있는 이들에게는 길동무가 되고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위로가 된다. 깊은 밤 귀가하는 직장인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새벽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손길을 돕는다. 또 내게는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외로움을 잊게 하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가로등을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 고요하고 확고부동한 모습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듯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침이면 가로등은 소리 없이 빛을 거둔다. 해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가로등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저물어간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낮 시간 그것은 잠들어 있을까? 아니다. 그것은 다음 밤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면 다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의 생활 리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짝꿍이 되어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가로등을 바라보며 우리 삶 속에 이런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본다.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들. 가족의 무언의 배려 이웃의 친절한 눈빛 낯선 길에서 잠시 나를 안내해준 지나가는 사람의 미소까지. 모두 내 삶의 암흑을 밝혀주는 가로등 아닐까? 그들은 별다른 대가나 인정을 바라지 않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나의 길을 환하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요즘은 밤마다 창밖의 가로등을 보며 작은 감사를 전한다. “고맙다”라고 속삭인다. 청도에서의 어둡던 밤을 떠올리면 이 작은 빛이 주는 안정감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가로등은 단순한 등불이 아니라 내가 이 낯선 땅에서 의지하는 익숙한 벗이 되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변해도 가로등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빛을 낼 것이다. 나도 이제 나만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는 은은한 빛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말 없이 묵묵히 하지만 확고하게. 그렇게 다른 이의 길을 조금이라도 밝혀주는 존재. 가로등이 나에게 가르쳐준 소중한 깨달음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고마운 가로등아, 당신은 땅 위의 별이로구나. 하늘의 별은 멀지만 당신은 우리 곁에서 가장 실질적인 빛이 되어주네. 이제 나는 창밖의 가로등을 보지않아도 그 빛이 마음에 스민 채 잠들 수 있게 되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조글에 오른 글</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