庾美花的美篇

庾美花

<p class="ql-block">젊음과 늙음 사이, 어느 봄날의 혼잣말</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봄날, 여러 가지 꽃이 활짝 피던 어느 날. 오랜만에 봄비가 이틀 연속 내렸다.</p><p class="ql-block">봄비는 소리 없이 찾아와 세상을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마른 가지 끝에 맺힌 작은 물방울은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며, 긴 겨울을 지나온 나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지붕 위를 톡톡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귓가에 맴돌고, 흙내음은 깊은 숨결로 마음속까지 스며든다. 그 향기 속에는 새싹이 움트는 설렘과, 다시 시작되는 계절의 약속이 담겨 있다. 길가의 꽃들은 빗속에서 더욱 또렷한 색을 띠며 고개를 들고, 작은 풀잎 하나까지도 생기를 머금는다. 봄비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세상을 깨우며 생명의 문을 두드린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세상은 한층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편이 울적하다. 어제 슬펐던 기억이 봄비를 타고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퇴직한 교원이다. 퇴직 전에는 항상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이름을 대신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혹시 ‘아주마’라고 부르면, 마음속으로부터 내키지 않고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퇴직하고 나면 간단한 여행이나 다니면서 느긋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퇴직 전보다 더 분망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도 하는 일마다 재미있는 활동이라 항상 즐겁고 행복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제, 나는 하루아침에 ‘흐리멍덩한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참담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p><p class="ql-block">배탈이 났다. 소화가 안 되어 병원에 갔다. 그런데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두 명의 호스피스 직원(혹은 안내 직원)이 양쪽에서 내 팔을 끼며 다정하게 말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르신, 어디가 불편하세요?”</p><p class="ql-block">“어느 진료과로 가시겠습니까?”</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들은 열정적으로 나를 안내하고 이끌었다. 그런데 나는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에게 끌려다닐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한 명이 다가와서 말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르신, 주사 맞기 전에 먼저 서류를 작성하고 수납을 해야 합니다. 제가 친절히 도와드릴게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친절하다지만 자꾸만 짜증이 났다. 내가 아직 치매 노인도 아니건만, 그들은 내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듯 다시 말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르신, 명함을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저희가 대필해 드릴게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펜을 확 빼앗아 쓱쓱 직접 써 내려갔다. 삐뚤빼뚤한 것도 아니고 제법 또박또박 썼다. 그러자 그들이 또 호들갑을 떨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와, 어르신 명필이시네요! 정말 멋지십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냥 주사를 맞고 언짢은 기분으로 병원을 나왔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기분을 좀 가라앉히려고 마트에 갔다. 집에서 얼굴에 팩이라도 해볼까 해서 팩 코너에서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할머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았지만 눈에 띄는 아이는 없었다. 다시 팩을 보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 쳤다. 보니 초등학교를 다니는 조카손녀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할머니, 여기 뭐 하러 왔어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또 ‘할머니’다. 가면 갈수록 심산이다. 온 하루가 ‘늙은이’로 변해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한두 번일까? 아니, 원래 사람은 수시로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아담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나타났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여보, 왜 여기 있어?”</p><p class="ql-block">“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홍삼액 사러 왔어.”</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우리는 용케도 나이를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한꺼번에 된통 걸려든 것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자꾸만 낡아가는 기분이 드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봄비는 아직도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내 마음속에도 어쩌면 봄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소리 없이, 다정하게, 그냥 나를 어루만져 주는 그런 비 말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연변녀성에 발표되는 작품</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