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칠월 칠석날이면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이라고 지금은 연인들의 사랑의 날이라고 한다 . 칠석날이면 나한테는 또다른 하나의 뜻깊은 날로 이날은 추억의 날로 그리움에 가득 찬 날이다 . 세상떠나신 할머니의 생신날이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 칠석날이면 할머니의 그리움에 마음이 애잔해지고 또한 동년의 추억으로 행복한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는 날이다 . 해마다 칠석날이면 마음속으로 돌이켜보게 되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할머니에 대해서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다 .할머니는 83세 고령으로 35년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 올해 나의 어머니가 83세인데 이틀전에 중풍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 할머니처럼 어머니도 83세를 마감하실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 그러니 오늘 칠석날에 더구나 할머니생각으로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 </p><p class="ql-block">나의 할머니는 평소에 늘 흰적삼에 검정치마 입으시고 가리마 머리에 은비녀를 꽂으신 전통 조선족여인이시다 .하지만 문맹이여서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시는 분이시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문화대혁명때 문맹을 없앤다고 촌에서 야간학교를 꾸렸었는데 모택동어록을 외우기 위하여 글공부를 배워주었는데 모주석어록도 마음대로 틀리게 읽어 촌에 나쁜영향이 끼칠가 걱정되여 더는 할머니더러 어록을 외우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래서 문맹퇴치야학교를 더 다니지 않아서 한글자도 배우지 못하셨단다 .또한 내가 여덟살 나이가 되여 소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친구들이 너의 할매는 돈도 헤아릴줄 모르는 멍청이할매라고 해서 말다툼하다가 어머니한테 하소연을 한적이 기억에 생생하다 .근데 그말이 정말이였다고 하니 믿기질 않았다 .이웃에서 돈 1원을 꾸어갔는데 일원짜리가 아니고 오십전짜리 두장을 돌려왔었는데 같은 돈이 아니라고 기어코 받지 않아서 끝내는 일원짜리 큰돈으로 바꾸어 받아서 온 동네의 웃음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였다.우리 형제 넷은 어릴 때 할머니의 옛말을 동화처럼 들으면서 자랐으며 그 옛말 옛이야기가 우리의 계몽교육으로 되였다 .온 동네치고 우리 할머니처럼 옛말 구수히 잘하는 분은 없었고 그 이야기는 책 몇권이라도 엮을만큼 많아서 나의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신 할머니라 생각했었는데 ,돈셈할줄 모른다니 한참동안 멍해졌다 .나의 아버지는 촌 회계로서 평생을 장부와 돈관리를 해왔었다.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가 멍청이라는 말에 배심이 나서 오후 하학하면 아버지한테서 동전 지페를 빌려서 돈 셈하는것을 가르쳤다 .일전,이전,오전,십전짜리 동전과 종이지페를 익히게 하였고 일원 ,이원 ,오원,십원짜리 큰 액수의 돈도 익숙히 익혔다 .그때 제일 큰 지페 액수가 십원짜리였다 .저녁이면 동생들과 함께 구수한 옛이야기를 듣고 그리고는 할머니와 함께 돈으로 물건사는 유희를 놀면서 할머니가 며칠내에 익숙히 돈을 세아릴수 있게 하였다 .후에는 자신의 담배쌈지에 말아두었던 돈으로 마을에 온 장사군한테서 얼음과자도 사주곤 하셨다 .</p><p class="ql-block">나는 첫째로 태여나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싶이 넘쳐나게 받으며 할머니의 응석둥이로 자랐다 .시집가서 애낳고 엿새만에 퇴원하여 엄마집에 잠간 들렸다가 시댁으로 갔었는데 엄마아버지는 외손녀를 받아안고 집으로 들어갔고 할머니께서는 초겨울 눈추위에 맨발바람으로 차문에 마주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어이구, 많이 고생했다.수술하구 낳느라구 많이 아프겠구나.바람맞지 말구 얼른 집에 들어가 따뜻한 가마목에 앉거라!>지금도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치솟는다. 할머니한테는 증외손녀보다 자신의 손녀한테 정이 더 컸던것이다 </p><p class="ql-block">이토록 할머니의 사랑만 받고 자란 내가 할머니의 림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나의 평생 후회로 될줄이야 ! 병환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광산 단위에 밀린 월급을 받으러 갔다가 일주일만에 일 마무리하고 현성에 도착하니 십자사거리에서 엄마와 아버지를 만났다. 누워계시는 할머니는 어쩌고 두분이 함께 시내에 오셨어요 하는 물음에 사흘전에 할머니가 세상떠서 너들은 연락이 안돼서 장례까지 다 치루고 장보러 오셨다 하신다.눈물이 볼타고 뚝 뚝 떨어졌고 사거리라 울음소리는 속으로 삼키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밥상을 차려놓자 나의 한돐반 되는 딸애가 뒤뚱거리며 할머니가 계시던 안방으로 걸어가더니 할머니가 없다고 손짓하며 뭐라 중얼거렸다 . 평소에 외가집에 놀러오면 늘 할머니한테 식사하시라고 손잡고 나오던 습관이였던것이다 . 순간 설음으로 북받친 울음소리가 집안에 터졌다 .이웃 친척삼촌이 한마디 하셨다. <장례식날 손녀들이 없으니 울음소리가 없어서 초상집같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손녀 고와해줄만하오 ! 손녀니까 며느리들보다 다르오 !> 원래 심술궂기로 동네에 소문난 친척삼촌이 방정맞은 볼부은 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 다행히 임신 7 개월인 여동생이 이틀전에 할머니 보러 왔다가 삼검불처럼 헝클어진 할머니 머리카락을 한오리 한오리 참빗질 하여 쪽져드렸기에 할머니께서 단정한 모습으로 저세상에 가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언니만 고와한다고 곧잘 불평부리던 여동생이 임신한 몸으로 할머니의 마지막 머리를 빗겨드린것이였다.임신 7 개월의 몸으로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은 막내남동생은 할머니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앓는 석달동안 엄마대신 할머니의 대소변시중을 다하고 장례후 대학갔고 큰 남동생은 일주일후 부고편지를 받고 회사공장뒤편에서 두시간 넘어 혼자 울음으로 슬픔 달랬다고 했다.</p><p class="ql-block">할머니 생전에 사랑만 가득 받고 할머니 령전에 큰절 한번 올리지 못한것이 지금까지 마음속 깊은 대못으로 박혀 있다 .또한 해마다 칠월칠석날이면 할머니를 그리게 되며 애달픈 심정을 달래본다 .언제라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고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였다. 이년전에 초고를 써놓고 오래동안 글쓰기를 멈추다가 오늘 칠월칠석 할머니의 생신을 기리여 다시 필을 들게 되였다. 저승에서도 할머니의 사랑은 여전하리라 !기억에 생생한 할머니의 모습과 사랑을 글로 적어 추모하면서 까치희소식으로 할머니께 전달되여 함께 하는 시간으로 추억을 쌓으며 효를 하는 마음이다 .</p><p class="ql-block">2024년 칠월칠석날 초고 </p><p class="ql-block">2026년 칠월칠석날 완성 </p> <p class="ql-block">2026년8월19일연교에서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