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의 발자국 황산에 새기다 ‍ㅡ 2 0 2 5. 1 0. 9. 2 7 ㅡ

扶宣(拒私聊)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color:rgb(255, 41, 65); font-size:22px;">운무 속의 아름다운 황산</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font-size:22px;">탐험가의 발자국 황산에 새기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b style="font-size:22px;">황산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이며 살아 숨쉬는 수묵화이다. ‘천하 제일의 기산(岐山)’으로 불리우는 황산은 말그대로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걸작이다. 황산은 기이한 소나무, 괴상한 바위, 구름의 바다, 겨울의 백설, 령험한 온천 등 ‘5대 절경’으로 유명하며 독특한 지질 지형과 풍부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중국 최초의 세계 복합유산(문화+자연)으로 이름이 높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18px;"> </b><b style="font-size:22px;">서악 화산(华山)은 험준하기에 ‘남성미’가 흐르고 안휘 황산은 아름답기에 ‘녀성미’가 흐른다고 한다. 황산은 단순한 경치가 아닌 자연의 위대함과 조화로움 그리고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천하의 명산이다. 자연 자체가 수묵화를 방불케 하는 황산은 방문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각의 경이로움과 령혼의 감동을 선사하는 진정한 인간선경이라 할 수 있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황산에 다녀온지 이젠 2년이 되였다. 말하자면 황산과 서하객의 글을 쓴다고</b><b style="font-size:18px;"> </b><b style="font-size:22px;">별러온지도 이젠 2년이 된다는 말이다. 황산유람을 하면서 머리속에 가장 많이 떠올린 인물이 바로 서하객이였다. 련화봉을 바라보면서도 그의 생각이였고 광명정에 올라서도 그의 생각이였다. 황산에서 돌아온 후 그와 관련된 동영상을 기본상 다 찾아서 시청한 상태이고 관련 서적도 적지 않게 읽었다. 하여 오늘 끝내 큰 맘 먹고 필을 들게 되였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황산(黄山)은 신화 속의 선계(仙界)를 련상시키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의 령감의 원천이 되여왔다. 그러나 이 산의 명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이는 다름 아닌 명조(明朝)시기의 려행가이자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1587~1641)이였다. 그가 남긴 생생한 기록과 탐험 정신은 황산을 우리 나라 오악(五岳)을 넘어서는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격상시켰다.</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span class="ql-cursor"></span></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서하객은 강남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여났으나 과거 급제 대신 ‘천지를 읽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당시 사대부들은 서책 속에서 진리를</b><b style="font-size:18px;"> </b><b style="font-size:22px;">찾았지만 그는 발로 뛰며 직접 자연을 관측했다. 22세부터 30여 년간 중국 전역을 누비며 지형, 암석, 식물을 기록한 그는 ‘종이 우의 학문이 아닌 산천이 전하는 지혜’를 추구했다. 특히 그는 황산을 두차례 탐험하며 그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b></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color:red; font-size:22px;">황산의 이름 높은 명물 ― 영빈송</b></p><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b style="font-size:22px;">1616년 2월, 서하객은 첫 황산 탐험에 나섰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도 그는 계곡을 따라 협곡을 넘었다. ≪서하객유기(徐霞客游记)≫에는 그때의 정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였다. “눈이 바람에 휘말려 허공에서 춤추니 마치 옥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하다.”는 그의 표현은 눈 덮인 련봉의 장관을 보여준다. 그는 이때 시내물의 류속을 측정하고 소나무의 생장 방향을 관찰하는 등 과학적인 호기심을 드러냈다. </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2년 후, 가을 황산을 다시 찾은 서하객은 새로운 경이로움에 빠졌다. 단풍이 물든 계곡과 구름 위로 떠오른 돌기둥의 조화는 그를 황홀하게 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체계적으로 봉우리를 탐사했는데 특히 1,864메터의 련화봉(莲花峰) 정복에 집중했다.가파른 절벽을 올라갈 때는 “손가락이 피투성이로 되였으나 정상에서 바라본 광경에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고 고백하고 새벽에는 일출을 바라보며 “선계가 따로 없구나”라며 감탄했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그의 황산묘사는 단순한</b><b style="font-size:18px;"> </b><b style="font-size:22px;">감상이 아닌 정밀한 관측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례를 들어 그는 “서해봉의 암석은 수직층리(垂直层理)가 발달했고 천도봉은 화강암의 거칠림(粗糙尤)이 도드라진다”고 기술하며 지질학적인 통찰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소나무는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며 그 모양이 마치 붓으로 그린 듯하다”고 묘사해 예술적 감성을 발휘했다. 특히 “오악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볼 필요 없고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도 볼 필요 없다(五岳归来不看山,黄山归来不看岳)”는 그의 유명한 평가는 황산의 위상을 훨씬 높여주었다.</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span class="ql-cursor"></span></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서하객의 글이 널리 퍼지며 황산은 문인들의 성지가 되였다. 청나라 화가 홍인은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황산 화파를 형성했고 시인 원매는 “서하객의 글이 없었다면 황산은 영원히 잠들번 했다.”고 말했다. 1990년 황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도 그의 기록은 중요한 근거가 되였다. 오늘날 황산 입구에는 서하객의 동상이 세워져있으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탐방로는 현대인들에게 인기 코스로 되였다.</b></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color:rgb(255, 41, 65); font-size:22px;">성스러운 기운이 흐르는 황산</b></p><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b style="font-size:22px;">서하객과 황산의 만남은 탐험가의 열정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는 상징적인 만남이였다. 그는 황산을 통해 지리의 진리를 추구했고 황산은 그의 글을 통해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나눈 깊이 있는 대화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황산의 절경 앞에서 감동할 때 그 배경에는 서하객의 눈부신 통찰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서하객의 령혼이 깃든 황산은 탐험가의 열정과 추구, 대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스며있는 성스러운 명산이다. 그는 눈보라 속에서도 과학적 통찰과 예술적 감성으로 황산의 비밀을 해독하며 ‘천하제일의 명산’을 온 누리에 알렸다. 오악을 넘어선 황산의 위상은 그의 유명한 평가를 통해 영원히 각인되였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에도 그의 기록은 초석이 되였다.</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오늘날 황산 입구의 동상과 탐방로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 현대인들에게 무한한 령감을 부여해준다. 서하객이 남긴 글은 단순한</b><b style="font-size:18px;"> </b><b style="font-size:22px;">탐험가의 발자국은 영원히 황산에 새겨져 있다.</b></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span style="font-size:22px; color:rgba(0, 0, 0, 0.9);">德之文</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