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밭 시리즈 3편

메아리 MEARI 诗朗诵

산행(山行) - 그날의 고사리 시 / 홍승현 우연이었을까계획이었을까봄 산에 오르는 차창으로 네 옆얼굴이 스쳤다 텐트를 치던 날친구들의 웃음 속에 숨어 있던 무언가를 우리만이 몰랐던가 고사리 뜯는 손끝에 스민 땀방울이 너의 목줄기로 흘러내렸다나는 말없이 내 주머니의 손수건을 넌더리냈고 네가 준 호두과자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달콤함이 아니라 네 손톱 밑의 흙냄새가 혀에 와닿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모닥불은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친구들이 일부러 남긴 텐트 한 칸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세다가 문득 네가 내 어깨에 기대었을 때 산새들도 잠든 새벽에 우리만 깨어있었다 이제 네가 떠난 지 몇 번째 봄인가고사리 돋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그날의 네 손등에 붙은 잔가시를 떼어주던 일이 생각난다아직도 내 손톱엔 그때의 미세한 상처자국이 남아있는 듯하다 멀리 사는 당신한국의 어느 창가에서 커피를 들고 이쪽 산을 바라보진 않나우리가 주웠던 그 많은 고사리 중 한 올이라도 네 그릇에 담겼을까아니면 모두 시간이라는 냄비에 너무 질게 데쳐져 맛을 잃었을까그래도 나는 매년 봄이면 산에 오른다 혹시라도 텐트 옆에 네가 남긴 빈 맥주병 하나가 아직 굴러다니지 않을까 해서 봄 산에서 피운 눈꽃 시/ 홍승현 텐트 안에 남은 밤은 고사리처럼 여린 마음을 데쳤다. 모닥불은 우리의 침묵을 붉은 불씨로 태우더니 산바람이 귓가에 머문 말을 이파리마다 흔들어 놓던 밤,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에 기대어 깊어가는 어둠을 나누었다. 밤이 지나고 봄이 지나도 너는 내 가슴에 산다. 고사리처럼 말아 올린 기억은 아직도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하늘을 적신다. 너는 먼 나라에 내 계절을 묻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남긴 그 빈 자리가 너의 밤을 어지럽히는가? 사랑은 고사리가 아닌데 왜 이리도 쉽게 데쳐 먹을 수밖에 없었나? 한 번 입맞춘 뜨거움으로 평생을 굶어야 한다니. 산은 그대로인데 너는 강 건너편으로 사라졌고 나는 이 둔덕에 서서 네 이름을 부르다 목이 쉬었다. 가을이 오면 고사리 대신 단풍이 네 자리를 덮겠지. 하지만 내 가슴엔 아직도 그날의 봄이 서있어 너를 기다리는 법을 잊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텐트 문을 열어둔 채 네 발소리를 듣는다. 한국까지 닿지 못할 바람이 이 편지를 전할 순 없겠지만 만약 네가 돌아온다면 또다시 산에 가자 고사리는 이미 우리만의 맛이 되어버렸으니 이번엔 불 피우지 말고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데워보자 그리움은 고사리처럼 자라서네 심장을 스치는 바람이 되리 봄 산에 핀 상처 시/ 홍승현 고사리처럼 말린 마음 봄비에 젖으면 다시 펴지는 법을 너는 안다 텐트 안에서 주웠던 네 뜨거운 호흡 한 조각 아직도 내 손아귀에 촉촉히 묻어 있다 산나물 캐던 날 네가 앉았던 바위 틈엔 지금도 우리 체온으로 자란 고사리 한 포기가 스스로 뿌리를 뽑아 공중에 흔들리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줄기마다 서로를 피한 햇살이 떠날 때 네가 주머니에 넣어준 호두과자 부스러기 삼 년 만에 찾아내 입에 넣었더니 그때의 단맛은 이미 공기 중으로 사라졌고 혀끝에 남은 건 텐트 밑에서 묻은 모래 알갱이 쩍쩍 갉아먹는 소리 한국까지 날아간 너의 그림자 한강 물에 비친 밤 거기서도 우리 산행(山行)의 불꽃이 너의 그늘을 덮지는 않는지 나는 이 산에서 네 이름을 불러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길 기다린다 고사리 캐던 손이 이제는 하늘을 캐고 있지만 매년 봄이면 텐트를 치러 온다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왜 고사리 대신 바위만 주워 담는지 그 돌멩이들 속에서 네가 남긴 체온의 각도를 찾으려 손바닥을 대보지만 추억이라는 건 항상 내 몸보다 차갑게 식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