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 서성중학 79년 력사로 ,마무리졌어요.

淑子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모교 서성중학은 1945년4월10일에 성립하였어요.</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서성중학교는 서성향 팔가자 구역에 문화교육의 요람이였고 청년들의 인생에 밑걸음이였고 동창들의 마음을 련결하는 든든한 바줄로서 교정의 깊은 추억은 가슴을 울리는 청춘의 메아리였어요. </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고향출신이며 서성중학을 필업한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인물 윤수범 동지는 연변주인민검찰원 검찰장으로 연변주인민법원 원장으로 다년간 사업하고 성인민대표대회에 중요한 직무로 사업하다가 정녕퇴직하였어요.우리 고향의 자랑이고 서성중학교 모교의 자랑이였고 우리 민족의 자랑이였어요.</b></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유고한 력사를 가진 서성중학이 유감스럽게도 2024년6월에 7명 교원.1명 학생이 참석한 모임에서 서성중학교 解体仪式 해체의식을 가지고 마무리졌대요.</b></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물론 우리민족은 생활에 아주 강한 민족으로 더 잘 살려고 더 편리하고 살기좋은 곳에가 발 붙히고 잘 살고 있겠지요.</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하지만 주인을 잃어 황페해진 고향땅에 잡초가 눈앞을 가로막을 정도로 무성하여 이것이 내가살던 고향인가에 의심하게 되였어요.</b></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작년6월 고향 북대3대에 발길을 돌렸어요.옛고향 사람들 보고싶어 찾으니 팔가자 층집에서 살고 있다네요. 길가에 무인기로 벼바다에 화학비료를 뿌리고 있는 남성분들은 모두 외지에서 온 한족분들이였어요.</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b></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고향은 많이 변했어요.몇십년을 관찰해보면 한족은 집 울타리부터 쌓고 고향을 지키고 서로 뭉칩니다.집집마다 울타리배자가 어찌도 높이 세웠는지 거기에 천정까지 올려놓아 울안을 볼수없었어요.그래도 옛날 그시절 마당에 강아지고 닭들이고 뒤쫓아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싶었어요.</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 우리조선족은 선조들로부터 력사적으로 조선반도의 전쟁과 엄중한 재해년대에 두만강을 건너 이땅에 벼농사로 시작하여 발을 붙혔고 개혁개방형세를 만나 언어와 생활습관이 편리한 한국에 뛰쳐나가 70여만명이 국적을 가지고 살고 있다니 조선족 력사는 이민의 력사라해도 과언이 아니겠어요.</b></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시대가 우리 모르게 모교가 자취를 감추고 고향 주인이 바뀌듯이 교체되는 점이 많아요.</b></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이 시각에 나의 고향사람들 고향 동창들 지금 어디에서 로년을 보내던지 모두 안전하고 평화로운 생활환경에서 복하게 잘 보내기를 기원합니다!</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