长沙,橘子洲,韶山,张家界

旅行者

<p class="ql-block"> 멋진 청년, 아릿다웠던 소녀시절이 엊그제 같은 여동생내외도 올해 60고개를 넘기는 환갑이다. 세월이 무정하고 빠르다더니 빨라도 너무 빠른게 아닌지 세월이 원망스럽다. </p><p class="ql-block"> 부모를 모시고 애들을 데리고 보다 나은 생활을 지향하여 들판에 나가 농사 짓고 직장에 출근도 하며 악착같이 살다가 개혁의 바람을 타고 식당도 운영 해보고 외국 바람에 어린애들을 할머니께 맡기고 미여지는 심정을 안고 모질게 멀리 태평양을 건너 미국땅에 가서 조그만한 가게를 근 20년 운영하여 생활에 보태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였으며 귀국하여 세탁공장도 운영하며 정신없이 살아온 인생, 문득 머리 들고 보니 60고개에 올라 섰다. </p><p class="ql-block"> 그래도 고생끝에 락이라고 지금은 큰딸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고 작은딸은 조그만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어머니 모시고 궁궐같은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젊은시절에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다. 화목한 가정 단란히 모여 건강 챙기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이 행복 영원하리.</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 인생 60고개 전환점의 계기로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형제들은 2024년의 따뜻한 봄날 자유여행을 하게 되였다.</p><p class="ql-block"> 우리는 장가계를 목표로 호남성 장사시로 떠났다. 심양에서 장가계로 가는 직행 교통편이 없어 이 기회에 모택동의 고향 소산을 방문하고자 경유지를 장사시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장사에서 기차로 장가계로 향하고 다시 중경을 거쳐 시쐉반나로 갔었다. 여행은 출발하여 돌아 오는데 13일이 걸렸다.</p><p class="ql-block">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혁명의 유적지, 지방의 풍물, 소수민족의 민속, 자연 경치, 열대 지방의 식물, 타지방의 인문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접하고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였다.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그리고 아름답다.</p> 53층 호텔에서 굽어 본 장사시 <p class="ql-block"> 우리는 장사시에서 귤자두에 있는 모주석의 화강암 조각상을 참배하였다. 32세 청년모택동형싱을 8000여개의 복건성 영정홍(永定红) 화강암을 붙혀 높이 32메터 길이 83메터 넓이 41메터의 크기로 조각하였는데 그 무게가 무려 2000여톤에 달하여 지금까지의 모택동 조각상 가운데 제일 크다고 한다.모택동 주석의 위대한 업적은 천추만대로 길이 전해 갈것이다.</p> <p class="ql-block">韶山(소산)</p> <p class="ql-block">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모주석의 고향 소산에 와서 모주석의 옛집을 참관하였다. 위인이 탄생한 옛집을 참관하면서 모주석의 탄생은 중국의 경사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p> <p class="ql-block">张家界(장가계)</p> <p class="ql-block">  우리는 일정대로 장사에서 기차로 장가계에 도착하였다. </p><p class="ql-block"> 일기예보에 장가계는 매일 비가 예고 되여 있다. 다행이 우리가 도착하는 날 구름만 조금 떠있는 맑은 날씨였다. 그런데 밤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새벽녘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내렸다. 다행이 날이 밝자 비발이 가늘이 지더니 유람지 출발 시간에 맞춰 비가 그쳤다. 하늘이 도왔다. </p><p class="ql-block"> 장가계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유람 명승지여서인지 여행 고봉기가 아니라는데도 사람들로 붐비였다. 장가계국가삼림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장가계의 멋진 산모습에 넋을 잃었다. 산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듯한 산봉우리들은 송곳인양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모양도 다양해 사람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산들은 거의 모두 90도의 절벽이였다. 더욱 희한한것은 그 돌틈에 나무들이 자라나 산을 이쁘게 장식하고 있었다. 조물주의 작품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