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부자에게 박수갈채를

英洙

<p class="ql-block">참된 부자에게 박수갈채를</p><p class="ql-block"> 맹영수</p><p class="ql-block">여유가 넘치는 삶은 누구도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좋은 직업을 찾으려 하고 이를 위해 나서 자란 고향을 떠나 정든 친인들을 떠나 서슴없이 타향살이의 설음도 만끽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우리의 삶은 부자로 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라면 왠지 이맛살을 찌푸리며 염오감을 나타내고 있다. 과연 부자란 염오감을 받을 사람들일까? 사실 부자들 대개는 남다른 아이디어와 신근한 노동으로 재부를 모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부자란 그 무슨 치욕스런 이름이 아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따지고 보면 부자와 빈자는 적지않은 면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부자와 빈자의 사고 및 삶의 방식은 완전히 틀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부자들의 생각은 어떻게 다른가”의 저자 스티브 시볼드는 부자와 월급쟁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한 정원에서 열심히 잔디를 손질하는 정원사는 부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데 원인은 그가 열심히 일하는 면을 넘어 생각이 앞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교장소에서 보면 빈자들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등 시중에 떠오르는 일상대화에 화제를 집중하지만 부자들은 아이디어와 정보 교환, 사업과 기부, 예술작품, 투자 등을 화젯거리로 삼고 있다. 외국의 어느 한 조사에 의하면 인터넷 사용에서도 부자와 빈자는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연봉 50만 이상의 응답자 중 70%가 언론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검색하지만, 연봉이 20만 달러미만의 응답자 중 44%만 뉴스를 검색한다. TV시청시간을 봤을 때도 부자들 중 일주일에 21시간 이상 시청하는 자는 21.5%박에 되지 않지만 월급쟁이 중 38.5%가 21시간 이상, 72.5%가 11시간 이상 시청한다고 답하였다. 그런가 하면 생활에서도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부자는 조용한 환경을 즐기고 깨끗함을 즐기지만 빈자는 시끌벅적함을 즐기고 어딘가 나태하다. 솔직히TV가 늘 커져 있는 집에서 진지한 생각을 하거나 가족과 오손도손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어찌보면 주위가 떠들썩하고 어지러운 것은 그만큼 나태하고 진지한 생각이 모자란 것이다. 미국 택사스대학 교수가 83개의 학생 자취방과 기숙사, 94개의 기업 사무실을 조사한 결과가 이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지저분하고 떠들썩한 공간을 가진 사람들은 깨끗하고 조용한 공간을 가진 사람들보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체계적이지 못하여 많은 면에서 창의력이 떨어진다. 개괄하여 말하면 부자는 투자와 성공 등에 초점을 맞추고 독서에 열중하면서 처처에서 돈을 벌어다 줄 기회를 찾고 일에 초점을 맞추지만 빈자는 오락과 소비, 그리고 신세타령 등에 초점을 맞춘다. 하기에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단 말도 생겼고 알거지란 말도 나온 것 같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도 부자가 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도 곧 가난해지고도 있다. 복권당첨자가 일확천금을 하고도 얼마 못가 다시 빈자로 되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사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부자로 하여 세상이 더 자극적이다. 부자가 있기에 사람들은 노동에 대한 가치와 그로 하여 산생되는 경제적잉여가치를 한층 인식하고 나름대로 분발에 박차를 가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부자가 있기에 세상은 뚜렸한 목표가 있고 라이벌도 생기며 있달아 발전을 추진하고 생활도 오색찬연 한 것이리라.</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빈자와 부자의 비례를 보았을 때 결국 부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사색의 나래를 펼칠 공간을 제공해주며 배움의 공간과 행복을 누릴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제 세상은 군중에 의하여 창조되지만 영웅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도리를 우리는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물론 부자들 속에 “그랑데 영감”같은 수전노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마쯔시다 고노스케나 빌 게이츠같은 대공무사한 부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13만 종업원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마련해준 마쯔시다 고노스케가 존경스런 부자가 아닌가? 사회에 억대재산을 기부한 빌 게이츠 역시 존경스런 부자가 아닌가? 또 우리 겨레의 문화사업 등에 많은 성금을 보내고 있는 광주의 리성일 사장도 얼마나 존경스런 부자인가, 알고 보면 세상엔 천편일률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듯 싶다. 사람 나름 마음 나름인 것 같다. 부자 역시 마찬가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우리말에 “마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다”란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의식주를 떠날 수가 없다. 그게 삶일 때 마음 하나로 어찌 그걸 해결할 수가 있겠는가?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려면 마음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허기진 자에겐 다독임보다는 식량이 더 필요한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난하면 머리가 숙여지고 얻어맞는다는 말이 있다. 가난하면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기를 펼 수가 없다. 나라가 그런가 하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알고 보면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단 말이 절대 아니다. 필요이상을 갖지 않고 헛욕심을 안부린 단 말이다. 어찌하든 가난은 영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부유도 수치라곤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인간은 태어날 때도 갈 때도 빈손으로 오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허나 가기 전 사회에 뭔가를 기부할 수 있고 남길 수가 있다면 그런 삶이 더 돋보이는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아마 그래서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불우이웃돕기와 각종 봉사활동 등 자선사업과 일자리창출 등을 통하여 얻은 만큼 사회환원의 의무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을 두고 말한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고 돈을 쓰는건 하나의 예술이라고 했다. 사실 이런 매너가 부족한 부자는 근근히 돈에 얽매인 수전노에 불과하다. 하기에 세상엔 돈 많은 사람은 많아도 진정 존경받는 부자는 그 수를 손꼽을 수가 있는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분투와 노력이 결실을 맺는 세상이다. 현재 백만, 억만 부자들이 부단히 출현되고 있다. 신근한 노동의 대가로 부자가 된 그들에게 우리는 시각을 바꿔 질투보다는 찬양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더불어 그들을 본받아 하루빨리 가난에서 해탈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어느 날엔가 당신도 참된 부자 행렬에 들어섰다면 당신도 사회에 그만큼 기여했다는 걸 설명해준다. 부자, 이제 그 이름은 노을처럼 아름다운 이름이지 수치스런 이름이 아니고 질투의 대상은 더구나 아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참된 부자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누구나 참된 부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ㅗ</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