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로 톺은 서악(西岳), 선풍도골 완연해라

金成哲

<p class="ql-block">本文刊于朝鲜文文学双月刊《长白山》2023年第2期</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color: rgb(22, 126, 251); font-size: 22px;">외길로 톺은 서악(西岳), 선풍도골 완연해라 (하)</b></p><p class="ql-block">김성철 / 기행수필</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돌기둥에 설치된 철제란간에 마음도 몸도 의지하며 천천히 고도를 높여간다. 바위를 깎아만든 돌층계를 밟으면서 올라온 바위길을 잠간잠간 되새겨본다. 좌우로 모두 아찔한 낭떠러지인 외길 등산로는 말 그대로 진퇴유곡이다. 소소리 높이 솟은 북봉과 그 주위의 봉우리들이 준초한 산세로 한눈에 펼쳐진다.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형성되였는데 산비탈에는 갈색 나무잎이 마른 채로 달려있는 활엽수가 낮은 숲을 이루고 지세가 높은 산등성이 주변에는 유일하게 푸른 빛을 발하는 소나무가 자태도 름름하게 꿋꿋이 버티고 있다. 어떤 비탈은 거뭇한 바위 뿐이고 나무는 없었다. 저 멀리 산등성이를 그 생김새에 따라 뚫어버린 험한 산길은 북봉까지 거침없이 이어지면서 검은 룡의 등줄기인양 유려하고 짜릿한 곡선으로 굼실거린다.</p><p class="ql-block">창룡령을 오르면 금쇄관(金锁关)에 바로 다다른다. 그 근처의 등산보조용 체인에는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며 주렁주렁 잠궈놓은 자물쇠와 소원성취와 만복을 기원하며 다닥다닥 달아놓은 빨간 리본들이 가득하다. 헤아릴 수 없을만치 숱한 리본들이 바람에 마구 펄럭거리며 산중턱 한 자락을 온통 벌겋게 물들여놓는다.</p><p class="ql-block">금쇄관에서 출발하여 운제(云梯)에 오르고나면 동봉(东峰)까지는 별 어려움도 없고 멀지도 않았다. 동봉에 있는 조양대(朝阳台)는 위치가 동쪽인데다가 지세마저 높아서 시야가 탁 트인 조망대로 해돋이관망에 제격이다. 날씨가 푸근한 계절이 찾아오면 수많은 산객들이 험난한 코스를 타고 밤길을 재촉해 이곳에 모인다. 새벽 일출시간에 맞추어 오로지 그 벅찬 해돋이를 구경하기 위함이다.</p><p class="ql-block">동봉은 전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의 조망대에서 시선을 조금 낮추어 굽어보노라면 동봉과 이어진 산등성이 끝자락에 화강암으로 지은 하얗고 정교한 정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송태조(宋太祖)와 은사(隐士) 진단(陈抟)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하기정(下棋亭)이다. 아담하고 포근한 느낌마저 주는 쉼터이다. 정자 너머 남녘으로 험준한 만학천봉이 저 멀리 옅은 겨울안개 속에서 외연히 하늘로 솟구쳐 있다. 고고한 기품의 뭇산 가운데 선풍도골이 완연하다. 어렵사리 돌이킬 수 없는 외길을 톺아오른만큼 성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가야지 싶다.</p><p class="ql-block">남봉으로 통하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좌측은 천길 낭떠러지요 우측은 푸르른 전나무와 뼈대만 남은 활엽수로 어우러진 숲이다. 은근한 나무향을 기껏 빨아들인 맑은 공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따스한 하오의 해살이 바위길에 떨어지고 바람마저 잠풍해서 날씨는 퍼그나 푹하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산객들의 표정도 하늘처럼 맑고 해처럼 밝아보인다.</p><p class="ql-block">그닥 높지 않은 계단길을 오르자 널직하고 평탄한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망대 가장자리에 무협소설가 김용의 필체로 새긴 “화산론검(华山论剑)”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표지석과 그 뒤켠의 첩첩준령을 배경으로 대여섯 젊은이들이 카메라에 삼각대를 받쳐놓고 영상촬영에 한창이다.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어가는 젊은이들의 진지한 표정에는 정열과 자신감이 진하게 어려있다.</p> <p class="ql-block">멀리서 봐도 아찔아찔하게 위험천만해보이는 남천문의 장공잔도(长空栈道)를 구경하고나서 금천궁(金天宫)을 가로질러 오르자 마침내 화산의 최고봉 해발 2천 백여메터의 남봉을 딛고 설 수 있었다. 남봉을 달리 락안봉(落雁峰)이라고도 부른다. 정겹고 로맨틱한 이름이다. 남봉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에는 쌀쌀한 바람이 사정없이 옷자락을 파고든다. 세찬 바람탓인지 아니면 높은 해발탓인지 산꼭대기에 허연 눈이 제법 두툼하게 쌓여 더욱 위엄스러웠다.</p><p class="ql-block">내려가는 계단길을 따라 솔숲 너머로 눈길을 던지니 지호지간에 서봉이 빤이 건너다보인다. 생김새가 련꽃잎과 흡사하다고 련화봉(莲花峰)이라고도 불리우는 서봉은 화산의 뭇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준수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락안봉을 름름하고 굳센 사나이에 비할 것 같으면 련화봉은 청아하고 준수한 소저(小姐)에 비함이 마침이다. 눈부시던 해가 기울면서 누그러들듯 온종일 쉬임없이 달려온 몸도 기진맥진해져 후줄근하다. 헌데 이상하게도 쉼돌에 호젓하게 걸터앉아 산공기를 한껏 들이키고 천천히 내뱉으면서 숨을 고르고나니 부지불식간에 그 후줄근히 공허했던 자리에 싱싱한 것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채워지는 듯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는 감을 느끼게 되였다. 화산이 지닌 오골의 정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산뜻하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산행의 고단함도 싸악 날려간듯 마음도 한결 가뿐해졌다.</p><p class="ql-block">세월이 흐르고 년륜이 쌓이면서 차츰차츰 묵은 것, 익숙한 것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패턴 속에서 옛된 사고방식이나 고정된 틀에 매여 변화를 꺼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하는 습관마저 생겨났다. 그런 와중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깨달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고 업그레이드하는 열린 마인드가 요청되는 것 같다. 독서나 려행도 좋고 자연탐험이나 사회활동도 좋다. 그렇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경험하면서 살다보면 우리가 하루하루 자신을 좀더 알아가고 보다 성숙되여갈 수 있는 것이 아닐가 싶다. 그리고 아무리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변화를 시도하는 실천 그 자체가 우리들의 삶에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이 되는 것인가. 아울러 좀더 진실되고 활발한 마인드를 조금씩이나마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언제나 사람을 고무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p><p class="ql-block">나 뿐만 아니라 강소 아저씨와 녀대생들도 이번 등반이 그러한 자그마한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리고 화산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려행객들 역시 그렇지 아니하겠는가.</p><p class="ql-block">짙은 장미빛 노을이 질 무렵 락조는 련화봉 서쪽 비탈의 가파른 벼랑을 붉게 물들이며 동쪽 비탈의 울창한 전나무숲에 비스듬히 떨어진다. 서봉에서 락안봉까지는 릉선을 타고 3백여메터의 바위길로 이어지는데 바위길 량켠 쇠사슬에 묶여 나붓기는 리본들이 석양빛에 짙게 물들어 두 가닥의 선명하고 완연한 곡선으로 단조롭고 밋밋한 겨울산을 눈부시게 장식해준다.</p><p class="ql-block">마침내 장장 아홉시간의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이제 하산할 시간이 되였다. 다행이도 서봉에서 지척인 하산삭도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p><p class="ql-block">케이블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화산은 상상외로 충격적이였다. 발 아래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골짜기와 도끼로 푹 찍어놓은 듯한 가파른 낭떠러지들이 계속 이어졌고 순간순간 아찔할 정도의 공포감이 엄습해왔다.</p><p class="ql-block">케이블카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40여분만에 출발했던 원점인 관광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대만큼 가슴 벅찬 산행은 안전하고 원만하게 마무리되였다.</p><p class="ql-block">내가 찾은 화산은 진천(秦川)의 기품을 그대로 빼닮아 지극히 묵직하고 터프하고 웅혼했다. 그러한 화산은 장구한 세월 속에서 관중(关中)평원의 튼튼한 기둥으로 우뚝 솟아 만고풍상을 드팀없이 버텨왔던 것이다.</p><p class="ql-block">스릴 넘치는 외길 따라 끈질긴 인내와 억척으로 한발 한발 톺아올랐던 위풍당당한 선풍도골의 명산, 서악의 매력은 역시 그 준험함에 있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