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감사하게도 3.8 녀인의 명절을 명절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잡을 수가 있었다. 쫙 펼쳐진 만남의 돛자리 우에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인들과 두루마기에 갓을 쓴 신사들이 수놓이를 한다. </p> <p class="ql-block"> 우리의 전통 의상을 타고 흐르는 곡선미에는 명절을 맞는 행복들로 찰랑찰랑이였다. 즐거움에 받쳐진 얼굴들에는 봄색들이 살폼살폼 피어 올랐다.</p> <p class="ql-block"> 한세기도 넘는 세월전에 부녀들은 자기의 명절을 갈망했다. 그것이 1857년 경이다. 그때 낸 녀인들의 목소리가 50년을 지난 1908년 3월 8일에 와서 크기는 눈꼽만하나 굳기는 박달같은 다짐을 받아내게 된다.</p> <p class="ql-block"> 그리고 1910년에는 17개 나라의 여인들이 우와와하고 박수 섞으며 덴마크에 모여 평화와 평등의 환경을 구축을 추진하고 하루 8시간 근무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렇게 3월 8일을 녀인의 명절로 자리매김 시키는데 큰 한발 내디딘다.</p> <p class="ql-block"> 그래서 3.8 녀인절은 1911년부터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눈치도 코치도 볼 필요가 없어지게까지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고장에서 이 날은 광주에서 제일 먼저 기치를 높였는데 그때가 바로 1924년이다.</p> <p class="ql-block"> 이어 1949년 12월에는 오성붉은기 휘날리며 3월 8일을 명절로 하였고 이는 국가의 법규로 정해졌다. 그 기운 지금도 왕성하여 우리들은 오늘도 이 나라 주인으로 된 행복을 하루의 시간속에 꽉꽉 채웠다. 우리는 이렇게 2년이 부족한 한세기동안을 이어왔고 또 이어가며 살아갈 것이다.</p> <p class="ql-block"> 말은 바른대로 해야 한다. </p><p class="ql-block">유엔에서는 우리가 사는 고장에 비하면 53년 후인 1977년에야 3월 8일을 세계 각나라 녀인의 명절로 자리를 확 잡아줬다. 말하자면 종족이나 언어나 문화와는 관계없이 이날은 지구촌 모든 녀인들의 명절이 되었다.</p> <p class="ql-block"> 아쉬운건 어떤 나라에서는 녀인의 날을 무시하고 있고 무시에 무마되어 왼눈한번도 팔지 않고 살고 있다.</p> <p class="ql-block"> 우리가 사는 고장에서는 이제 녀인들의 명절을 부르는 법마저 눈부시게 꾸며졌다. 비록 녀성이 가지는 38가지의 부름법에다 비하면 난쟁이라 하겠지만 ‘왕’과 ‘신’을 넣어서 ‘녀왕’의 날, ‘녀신’의 날이라고 받들어주니 이 고장 녀자들은 꽃을 초월한 높이에서 세상의 ‘쎈무 찌두, 헌’을 독차지 하고 산다.</p> <p class="ql-block"> 부러울 것이 없으면 뭐할 때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수리하니 부러울 것 없으니 세상 복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온다로 확 변하여 기분의 보따리를 파고 든다.</p> <p class="ql-block"> 인류 문명에서 최고와 최대의 재산인 건강챙김의 법도를 가르침 받고, 우리 놀이 문화의 정수인 윷의 오묘를 귀담아 듣고, 흘러간 우리 력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고 읽는 자리가 되었으니 만남의 혈색이 고와졌을 건 안 봐도 비디오라 하겠다.</p> <p class="ql-block"> 그런데다가 치마저고리 우아하게 받쳐입고 두루마기에 갓을 쓴 멋쟁이들이 어우러져 또랑또랑 랑송의 한소리로 시가에 물감을 들이니 그 아름다움 형언할 말이 없어서 그냥 긁적긁적 한다.</p> <p class="ql-block"> 그 뿐인가! 동심의 천국 윷놀이를 벌리노니 풍경화도 저리가라 함이다. </p><p class="ql-block">윷이야 모야를 소리쳐 부르다가도 윷이 나오고 모가 나오면 덩실덩실 어깨춤에 나풀나풀 나비춤이 대령하니 만남의 마당에는 희열의 분홍바다가 철썩인다.</p> <p class="ql-block"> 클라이막스까지 올라간 마음을 갖고 내려와서 차분한 줄에 말려야 할 때가 되니 다기공연이 대령하고 있다. 조미료를 넣은 료리마냥 맛있는 다기 공연을 마치니 어느새 몸과 마음을 안아줄 귀가의 길이 열린다.</p> <p class="ql-block"> 속아지 험독한 놈때문에 걱정한보따리 싸서 짊어지고 무겁게 걷던 걸음이 가벼워 졌다. 갇히고 쫒기고 꼬이고 답답했던 마음의 묵은 때들이 깨끗이 세척되는 하루가 순간으로 흘렀다.</p> <p class="ql-block"> 뭉침의 참뜻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높으나 낮으나, 맑으나 궂으나 나눔을 품으로 실천하는 고운 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그날 보냈던 하루에 담아야 하는 귀감은 낱가리만큼이다. 공중메모지가 있어 문자나부랭이로라도 그들을 기억할수가 있어 다행이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