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 투쟁사에서 반드시 알아야할 력사이야기(0279)

韩老翁

<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우리 조선족은 근로용감하고 개척정신이 강한 민족이다.중국인민의 해방사업과 사회주의건설사업에서 조선족은 자신의 땀과 선혈로 위대한 시편을 엮었다.이미 중앙인민방송국 민족중심 조선어부와 민족출판사 , 중앙조선어 방송에서 출판 방송한(련속방송)영원한 기념비에서 중요한 조선족의 탄생과 조선인의 구별점에 대해 말하려고한다 </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일찍부터 동북에 눈독을 들인 일본제국주의는 “9.18”사변을 통해 동북을 강점하였는데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별 저항도 하지 않고 130여만 평방키로 미터의 국토와 3.800만 인구를 가진 동북을 내버리고 말았다 동북을 강점한 일제는 청나라 말대황제 부의를 괴뢰황제로 내세워 괴뢰만주국을 세웠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행정구역은 동만.남만 북만으로 결정하고 장춘을 수도 新京으로 하였다.</i></b></p><p class="ql-block"><b><i> 조선민족의 탄생과 조선사람 분기점은 우리후대들은 꼭 알아야한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일제가 패망하였지만 가난한 조선사람들의 살길은 여전히 험악하기만 하였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중국 인민 공화국 건립전 조선민족은 한개민족이 아니라 (조선사람 조선인)으로 취급하였으며 마우재란시(쏘련)군이 대 도시를 점령하고 치안을 유지한다지만 기타 소도시 농촌은 호적들(토비)성화가 극심하였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1947년 통계자료를 보면 동북경내 조선족인구는 216만이던것이 국민당 악세력과 일본군포로 토비악당들 민족리간정책,마적들 습격에 진절머리가 난 많은 우리민족 겨레들은 란리를 피하여 반도를 떠났다.이로 인하여 216만 인구로 부터 110만평으로 급감하였다.이것은 우리배달민족 큰 불행사이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자기 터전이 아까와 자리를 뜨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했고 (광복)이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조선족농민들 진정한 해방은 아득히 멀어만 보였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우리 민족의 항일로간부인(韩青):(해방후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민족처 처장으로 있어고 1999년심양에서 돌아 갔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한청은 1912년 12월 조선경상남도 태생으로 항일군정학교 5기필업생이며 중국공산당원이며 팔로군 129사 정치부에서 사업했다 1943년 대적공작부 간사로 지하공작을 하다가 1945년 8월에 조직의 파견으로 심양에 오게되였다 이때 심양의 원 서탑 조선학교 (현재 심양시 6중)에서 500명이 모여 “8.15”경축대회를 열었다 이대회에서 조선독립 동맹간부 70여명이 조선으로 귀국하고 조선의용군 전군은 동북에 남아 중국인민해방전쟁에 참가하기로 한곳이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중국공산당 조선의용군 사령인 무정장군이 조선의용군 약 2000명을 모아놓고 선포하기를 조선독립동맹 간부는 귀국하고 남아있는 조선의용군은 제 1지대 남만 3지대는 북만 5지대는 동만지구로 가기로 했으며 간부들 명단을 공포하였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무정장군은 황포군학교 필업생으로 홍군포병퇀 제일기 포병퇀 사령원이고 장정로간부이며 산하에 병사들은 절대 대부분이 조선족으로 무어젓다.)</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심양의군인대회는 조선사람과 조선족의 혁명력사에서 뚜렷한 분계선이며 선명한 표현이다. </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이것이 우리조선족 역사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다시 설명하면 1945년 8월부터 중국 조선족과 조선독립동맹 정식으로 갈라지고 조선족의 탄생한 시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조선의용군 군인대회 .사실은 조선의용군의 운명과 중국내 조선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심양시대흥향 오가황 조선족소학교(심양시6중)에 조선의용군 군인대회 사적지 기념비가 있다 </i></b></p><p class="ql-block"><b style="color:rgb(237, 35, 8);"><i> 그전에 조선의용군 동맹회는 조선사람들로 무어진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 한개 조직이며 무정장군이 영도자이다. (조남기 장군이 서언을 쓰시고 리덕수주임이제사를 남긴 영원한 기념비책을 참고하시기를 바란다)우리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해방전쟁 ,항미원조 ,사회주의 건설에서 공훈이 너무나큰 민족이다 . ( 조선족 20명중 한명이 참군 참전 하였으며 동북으로부터 해남도해방까지 항미원조 최전선에서 피로써 물들인 민족이며 하여 혁명렬사가 많은 민족이며 연변에는 산마다 진달래 산마다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모주석과 (국기, 오성붉은기 속에는 조선족의 피가 물들었으며 )특별히 당 중앙에서는 조선족의 역사적 공훈을 긍정하고 관심하에 주덕해 동지를 제1서기로 조선족 (자치구로)성 일급 행정지구로 명명하여 주신것이다 허지만현재 개혁 개방이 심화되고 지구촌이 한 마을이 되는시기 조선족인구는 날에 날마다 축소되고 외국나들이 ,대 도시 ,로 나아가니 피로로서 바꾼터전에 임자없는 살구나무 열매는 눈물인양 뚝.뚝 ....쓸쓸한 마을에 집들은 점차로 이민족이 차지하고 민족의 동화로 후대들의 앞날은 기대조차 어렵운 현실이다.지금 현재 더욱 한심한것은 조선족 자치주에서 자기민족의 문화 교육도 박탈당하여 소학교 교육부터 조선어과를 취소하고 한어로 한다고한다 이것이 그래우리민족의 렬사들이 피를 흘리며 찾은 민족자치란 말인가? 한심한 일이 않일수가 없다 민족의 동화 변두리에서 상처에 소금 뿌리기이다 우리 자치주 제일서기 주덕해 서기 사망후부터 자치주 제일의 서기는 한족이다 그리고 자치주에서 지방행정까지 조선족이 소수민족 대우를 제대로 받지못하고 도리여 “그어떤 민족은 바보 머저리제외하고 모두 승승장구로 출세하는 세월”참으로 理解가 않이된다.지금 산재지역에 조선족들은 자기민족의 언어문자를 되 찿으려고 “주말학교”설치하고 애타게 노력하고 있다 (상해시 .천진시 .청도.위해시 등등) 여러분들 저마다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개혁 개방이래 어처구니 없는 개혁은 갈 길이 멀고 험난한 길 뿐이다.</i></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