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br></h3><div>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div><div>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div><div><br></div><div>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div><div>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div> <h3><br></h3><div>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div><div>이제 다 못 헤는 것은</div><div>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div><div>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div><div>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div> <h3><br></h3><h3>별 하나에 추억과</h3><div>별 하나에 사랑과</div><div>별 하나에 쓸쓸함과</div><div>별 하나에 동경과</div><div>별 하나에 시와</div><div>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div> <h3><br></h3><h3>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h3><h3>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쟘」 「라이너․마리아․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h3> <h3><br></h3><h3>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h3><div>별이 아슬히 멀 듯이,</div><div><br></div><div>어머님,</div><div>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div> <h3><br></h3><div>나는 무엇인지 그리워</div><div>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div><div>내 이름자를 써보고,</div><div>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div><div><br></div><div>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div><div>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div> <h3><br></h3><h3>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h3><div>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div><div>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div><div>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div>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말하자면—</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윤동주의 대표시 중에 가장 널리 애송되는 주옥 같은 시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시의 1연부터 시인은 읽는 이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해준다.</p><p class="ql-block">계절이 지나가는 하늘 이란 2차적인 수식을 통해 계절의 흐름이 지닌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하고 3연에서 별을 다 못 헤는 까닭을 나열하며수많은 삶의 진리를 환기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 내일 밤이 남은 까닭,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 3문장 속에는 일상성과, 희망, 무궁한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철학가의 사상이 담겨 있고 삶의 진리가 담겨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4연에서는 여러 시어들을 던지며 숱한 의미들을 시 속으로 불러오고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쓸쓸함, 동경, 추억, 어머니</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일상 언어에서는 도저히 섞이지 않는 이 어휘들이 윤동주의 시 속에서는 하나의 노래가 되어 울려 퍼진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시의 5연은 언뜻 투박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소학교 시절의 그리움, 외국 이름의 생경함, 계집애의 어여쁨, 벌써 애기 어머니가 돼 버린 세월의 유수성, 자연의 모습, 동경하는 모든 것들이 녹아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시의 6연에는 아스라이라는 하나의 형용사를 가지고 극적 전환을 이끌어낸다.</p><p class="ql-block">앞의 연들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경험만으로 해석될 수 있었던 반면 7연에 접어들자 시의 남아 있던 직선전인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p><p class="ql-block">무언가 그리워 별빛이 내린 언덕에 내 이름자를 석자 써보곤 지운다.</p><p class="ql-block">이 화자의 행동이 가진 의미는 단순한 보편적 경험과 감정으로는 해석하기 힘들다.</p><p class="ql-block">하지만 그 속에는 뭔가 모를 애절함과 아름다움이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세간의 해석들이 말하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순한 해석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p><p class="ql-block">그리움과 별빛이 상호적으로 주고받는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그 속으로 이름자를 쓰고 지우는 행위에는 무언가 아련함이 존재한다.</p><p class="ql-block">이 느낌이 주는 감동만으로도 시를 읽는 기쁨은 충분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위에 다른 무언가를 덧 씌우는 것은 독자 자유로운 해석이다. 문학이 가진 상호텍스트성, 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시의 마지막 10연에서는</p><p class="ql-block">무덤 위에 푸른 잔디가 피어나듯</p><p class="ql-block">자신의 이름이 적힌 무덤자 위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는 화자의 다짐이 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마치 한 편의 영화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자 오케스트라 협연의 배경음악으로 쾅쾅 쏟아지듯 이 마지막 연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절정의 느낌을 흠뻑 느끼게 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무덤, 푸른 잔디 의 이미지는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라는 구절로 대구 되어 시의 서사를 절정에 도달하게 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制作: 김혁</p><p class="ql-block"><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