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마음의 통장 / 리정화</h3><div><br></div><div>“네 이놈의 새끼 가긴 어디로가 녀편네 따라 가겠다구 못간다 못가”</div><div><br></div><div>어느새 나타났는지 눈을 뚝 부릅뜬 시아버님이 도끼를 들고 차에 이삿짐을 싣는 아들에게 불효령이다.</div><div><br></div><div>“도리깨 아들같으니라구”</div><div><br></div><div> 도끼를 들고 나타난 아버님의 눈에서는 불이 뚝뚝떨어졌다. 남편의 얼굴은 숯처럼 까맣게 질렸고 그자리에 망두석마냥 굳어있었다. </div><div><br></div><div>“ 이년 날 버리고 너희만 잘살려 가려구? 안된다 안돼 가겠으면 너 혼자 가라 이년” 퍼런 도끼를 든 시아버님이 갑자기 나한테로 돌아섰다 나는 너무 무서워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하였다. 나는 아버님과 함께 오년을 살았기에 아버님이 화내시면 얼마나 무서운 분이란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치 독수리 앞에 놓인 토끼마냥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이 떨렸다 얼굴은 백지장이 되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아연실색한 나는 그자리에 폴싹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div><div><br></div><div>시아버님은 동란 시기 반혁명으로 몰려 갖은 수모와 박해를 당하였다. 마음에 그 화가 싸여서인지 작은 일에도 마구 역정을 내고 화를 낸다. 문화대혁명 동란이 끝나자 명예회복이되어 우리보다 삼년전에 먼저고향으로 오셨다</div><div><br></div><div> 남편도 고향에 가서 살고싶다고 해서 우리도 두 아이를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으로 이사했다. </div><div><br></div><div>그후 아버님은 줄곧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 마을은 몇 집을 뺴군 다 친척들이었다. 저녁에 술상이 차려면 이튿날 아침까지 차려져 있었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매일과같이 술에 젖어 있었다. 집안은 사흘이 멀다하게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리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다가도 두 어린자식 생각하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div><div><br></div><div>이곳에서 계속 살다간 꿈도 목표도 없이 모두 허송세월 할 것 같았고 가정이 풍지박산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문화대혁명으로 공부못한 아위움에 자녀들이라도 꼭 대학공부를 시키려고 다짐하였는데 이곳은 현성에서 팔십리. 향정부에서 이십여리 떨어진 심심산골이라 애들을 공부시키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div><div><br></div><div>남편은 넷째이기에 우리가 꼭 아버님을 모셔야하나는 도리가 없다고 생각도 했었다</div><div><br></div><div>시퍼런 도끼를 들고 불호령을 하는 아버님을 보면서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아버님 앞에서 딱 잘라 말했다</div><div><br></div><div>“아버님, 아들과 함께 사세요, 나는 애들과 함께 떠나겠어요”</div><div><br></div><div>나의 당돌한 행동에 아버님도 주춤하였다.</div><div><br></div><div>열악한 환경속에서 탈출해야 되겠다는 일념이, 자식들을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두려움을 몰아냈다.</div><div><br></div><div> “녀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이 바로 이런걸 두고 말하는가 싶다</div><div><br></div><div>나의 고집을 꺾을수 없는 것을 눈치챈 남편은 계속하여 이삿짐을 싣는다. 얼마 안되는 이삿짐을 주섬주섬 다 싣고 떠나려는 그순간이였다</div><div><br></div><div>“이놈의 새끼”</div><div><br></div><div>어느새 아버님이 번개처럼 달려와 떠나려는 아들의 발등을 도끼로 내리 찍었다. 남편의 발에서는 선지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숨이 꺾 막히고 눈앞이 아찔해난다. 하늘땅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쓰러질것만같아 몸을 겨우 가누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옷가지를 찢어서 남편의 발을 싸매주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2년을 살아온 시집 마을를 미련없이 떠났다 .</div><div><br></div><div>두 주먹만 가지고 도시로 온 우리는 힘든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했다.</div><div><br></div><div>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였지만 얼굴에는 항상 근심이 서려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아버님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온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일년이 거의 될 무렵 나는 남편과 함께 시집마을로 향했다.</div><div><br></div><div>우리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아버님부터 찾았다. 그런데 서로 모시겠다는 자식들 집에는 계시지않고 당금 쓸어질것만 같은 초가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이였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버님은 누워계셨다.</div><div><br></div><div>“아버님” 아버지는 펄떡 일어나시더니 이외란듯 푸석푸석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그 눈길은마치부모를애타게 기다리는 어린애의 간절한 눈길과같았고 고독과 서러움의 애절한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집안에는 그릇 몇개와 이불 한 채만 달랑 있었고 온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광경을 본 남편은 우두망찰 하고 서있었다.</div><div><br></div><div> 남편은 형제중 넷째인지라 나는 아버님을 우리가 꼭 모셔야한다는 책임감이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보니 자식된 도리를 못한것 같아 마음이 찔리였다. “내 부모가 소중하면 시부모도 소중하다 그 아들과 부부가 됐으니 그 아버지를 모른다고 한다면 어떻게 부부의 화목할 수 있을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편과 상의도 안하고 아버님의 이불과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보따리에 쌌다.</div><div><br></div><div>“아버님 우리집에 가셔서 함께 지내요” 남편은 나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당신 고맙소”하며 감격했다</div><div><br></div><div>우리 부부는 아버님을 모시고 뻐스에 올랐다. 나는 대팔령을 넘으며 차창밖으로 엄동설한에 떨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아버님도 그 추운 방에서 홀로 떨고 있었겠지, 불효하는 자식들을 얼마나 원망하였을까, 비록 아버님의 성격이 유별하시고 괴벽하시지만 그래도 남편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자식들을 걱정해주시고 염려해주시는 부모가 아니였던가. 도끼를들고 달려드시던 아버님의 기억은 사라지고 이제라도 아버님을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div><div><br></div><div>스쳐가는 나무를 바라보느라니 삼년전친정 엄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div> <h3>나는 친적언니의 소개로 지금 남편을 만났다. 마음 착하고 다재다능한 남자라는말에 저 사람과 결혼하면 고생은 안할것같 아 결혼하였다. 결혼식 날 나는 신부의 예쁜 화장은 간곳없고 눈물 범벅이 되었던 나, 중풍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와 집안 살림의 무거운 짐을 가녀린 두 동생들에게 떠맡기고 나만 잘살겠노라고 시집가는 내 마음은 미여지는 것만 같았다.<br></h3><div><br></div><div>나는친정 걱정 때문에 사흘이 멀다하게 사십여리나 되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첫 애를 출산하고 한달이 되어가니 애를 업고 친정으로 갔고 뻐스를 놓쳐 삼십여길을 애를 업고 걸어간적도 있었다. 이런 내가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남편이 장모님을 우리 집에 모셔오자고 했다 나는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를 모셔오자는 말에 깜짝 놀랐다</div><div><br></div><div> 그때 우리 살림도 째지게 가난했다 시아버님이 가을에 쌀을 주기로 사처에서 돈을 꾸어 섰기에 가을에 생산대에서 쌀을 나눠줄때면 정미소에서 빚으로 다 가져가고 가을이라도 쌀독은 텅텅비여있었고 가을부터 우리는 또 쌀을 꾸어 먹어야만 했다. </div><div><br></div><div>그런 형편에도 어머니를 모셔오자는 남편의 말에 나는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마음에 있던 무거운 돌멩이를 내려놓은 것만 같았다. 남편은 손잡이 뜨락또르로 어머니를 우리집에 모셔왔다. 나는 부끄러움도 체면도 잊고 먹을 양식을 위해 애를 없고 이집저집 쌀 얻으려 다녔다 겨우 쌀을 꿔서 끼니를 이어갈 때도 있었고, 꾸지 못하면 남편이 도시에 사는 친구집에 가서 가을에 쌀을 주기로 하고 밀가루를 얻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어머니 때문에 얼굴한번찡그리지 않았다 어머니 대소변을 버리기도 하고 더러워진 어머니의 옷가지들을 강으로 나가서 빨기도 했다 쪼들린 살림에서도 남편은 어머니가 마음 편히 계시도록 신경을 썼다. 어머니는 말씀은 잘 하지 못하였지만 남편한테 엄지를 척 내밀어 ‘최고’라고 하셨다.</div><div><br></div><div>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2년 계셨다 남편은 나의 동생들까지 모두 우리 마을로 데려왔다. 후에 동생들이 집을잡고 어머니를 모셔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남편은 어머니의 림종을 지켰고 후사도 남편이 도맡아 처리하였다.</div><div><br></div><div>나는 추억속에서 헤어나와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아버님이 홀로 지낸것이 모두 내 탓인것만 같았다. 남편에게도 아버님께도 죄송하였다. 아버님을 바라보니 근심걱정 없는 편안한 모습이여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차창밖을 바라보니 스쳐가는 나무들도 나에게 응원과 칭찬의 박수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div><div><br></div><div>우리가 사는 집은 세집에 단칸방이었다. 잘 때에는 커튼이 내려지고 아침이면 카튼이 걷히고는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친정 아버지께서 가르치시던 말씀을생각했다 ‘반포지효’(反 哺之孝)라는 사자성어이다 “까마귀가 부화한지 육십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를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에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단다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뜻하는 것이란다”아버지께서는 그 글귀를 가르치면서’ 너희들이 부모를 모르면 짐승보다 못하다’라고 하셨다</div><div><br></div><div>부모는 자녀들의 교과서라는 말도있다. 두 자녀를 둔 나는 자기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아버님을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 했다.</div><div><br></div><div> 우리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부대끼며 일년반을 지내였다.</div><div><br></div><div>하늘도 우리가 사는 사정을 보고 가여우셨나보다 한국에 계시는 저의 외숙부가 중국에 방문 오셨다. 단칸방에 시아버님과 함께 지내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 부부가 엄마를 모신 사연을 들으시고는 우리에게 사십평 되는 집 한채 사주셨다. 마침내 우리는 드디어 방 두개짜리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div><div><br></div><div> 고정된 직업도 없이 두 애의 공부뒤바라지까지 하면서 사노라니 우리의 생활은 늘 빠듯하였만 부모님과 함게 지내니 남편이 술도 적게 마시었고 부부싸움도 적어졌다. 시아버님은 우리와 함께 지낸지 오년이되는 해 감기로 몸져 누우시더니 열하루 만에 하늘나라로 가셨다.</div><div><br></div><div>아버님이 돌아가신후 우리 부부는 또다시 잠잠했던 부부싸움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많이 싸웠다. 그러나 부부 인연은 삼십여년 오늘까지 게속 이어온다. 지금은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한다</div><div><br></div><div>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그렇게 많은 싸움을 하면서도 부부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온 비결은 무엇일까.</div><div><br></div><div> 우리는 각자 자신의 마음의 통장에 효행을 저금하고 있었던 것이다.</div><div><br></div><div>그어려웠던 나날에 남편이 장모님에대한 효행을 나는 내 마음의 통장에 고스란히 저금하고 있었으며, 남편도 단칸방 세집에서 살며 아버님을 모신 나에대한 고마움을 마음의 통장에 오롯이 저금했던 것이였다. 내가 남편과 싸워 화를 싹이지 못해 씩씩거리노라면 마음 깊숙한 곳에 저금한 통장이 살포시 나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러면 치솟던 화도 어느새 사그러진다. </div><div><br></div><div>“효가 백행의 근본이다”라는 말도 있으며 성서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div><div><br></div><div>우리는 부모를 모시면서 부부의 화목을 가져왔으며 부부 인연의 끈도 이어왔다 잘 모시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자녀들에게 좋은 영양을 끼친것같다. 두 딸은 가정을 이룬 자녀들이지만 친정 부모에게나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다. 큰 딸은 현재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으며 작은 딸도 시보모님들이 한국에서 돌아오시면 모시겠다고 큰 집을 마련하였다.</div><div><br></div><div>나는 지금도 두 자녀들에게 시부모님들에게 성의를 다하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며 잘 모시라고 잔소리 한다 그러면 부부도 화목해지고 가정의 평화도, 기쁨도. 건강도, 명예도, 재물도 모두 따라온다고 .가르친다.</div>